같은 직업 = 같은 적성 ?
같은 직업이라 할 지라도 각기 다른 적성의 이유로, 직업과 잘 맞는다고 표현하는 걸 들었다. 글 쓰는 사람의 직업은 천차만별인데 각기 다른 기질과 습관 그리고 일상을 보내면서도 모두가 적성에 잘 맞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걸까 ?
재밌었다. 언제나 직업은 적성에 잘 맞아야한다고, 적성에 맞지 않는 직업을 지니면 삶이 우울하다고 들어만 왔지 막상 직업을 갖게되니 어쩌면 그것은 본인만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닌걸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만 알 수 있는 영역이 있다. 사회 초년생으로 살아가는 요즘 이 영역에 머무르는 시간이 꽤 길어진다. 어떻게 일해야 생산성을 늘릴 수 있는지, 이 길을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 오늘 주어진 시간을 과연 잘 사용했는지, 누군가를 속이진 않았는지, 그 누군가가 혹시 나는 아니었는지.
혼자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친구들과 선후배와, 동료들과 그리고 준영이와 대화하는 밀도는 더더욱 커진다. 혼자만의 생각에 갇히지 않기 위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그렇다면 다시 혼자일 때로 돌아와서 나는 이제 어떻게 생각하며 행동해야 하는지 다듬고, 실천한다.
환경 보호에 대한 글을 쓰면서 왜 출판은 종이를 낭비하는거야 ?
요즘 젊은 사람들은 왜 그렇게 열심히 운동하는거야 ?
작가의 문체는 사람의 성격처럼 형성되는게 아닐까요 ?
주변 사람이 내게 던진 문장에 대하여 꽤/자주/오랫동안 곱씹는 습관이 있다. 당장 대답할 수 없는 질문에 대하여 대답을 잠시 보류하고 생각하다보면 퍼뜩 아, 이런 대답을 할 수 있겠구나. 그런데 이런 문제가 또 있는데 이건 어떻게 풀어야할까? 다시 생각해보자.
그러다 마법처럼 어느 타이밍에 어느 책을 펼쳤을 때, 적절한 문장을 발견하곤한다. 그때 나는 살아있다고 느낀다.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구절을 발견할 때, 독서의 기쁨은 배가 된다. 영원히 재밌는 이것을 삶의 중심에 두고, 한바탕 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한다. 아침에 눈 뜨고 가장 먼저 하는 생각, 즐겨보는 글, 출퇴근하며 느끼는 것, 운동 중 떠오르는 어절, 잠에 드는 순간까지 책에 대해 생각한다.
자발적으로 하는 일이 무엇이 있느냐 물으면, 당연히 나는 독서요, 라고 대답한다. 지난 5년간 책은 내게 스승, 좋은 친구, 위로를 건네는, 언제나 든든한, 무궁무진한 재미였는데, 가끔 이 길이 아니고 다른 길 위에서의 나는 어떨까 생각하면 한없이 작아진다. 하지만 다른 길 위에서의 나는 분명 지금 길 위에서 내가 느끼는 것을 결코 느끼지 못하니까, 그러니까 나는 이 길 위에서 계속 걸어갈 수 밖에 없다.
직접 선택한 삶의 길에서 불안한 이유는 점점 깊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한 치 앞도 안 보이지만 모든 것이 그래왔듯 이 길도 언젠가 끝이 있다. 마지막 세트가 있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깊을지 또 이 끝엔 뭐가 있을지 궁금한데, 이건 오직 나만알 수 있어서 그냥 계속 가는 수 밖에 없다.
좋아하는 걸 찾으려 책을 읽다가, 책을 좋아하는 걸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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