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차ㅣN개의 일상ㅣ끝과 시작ㅣ입시ㅣ동생ㅣ20대

 


동생과 내가 6살의 나이 차이가 나서, 대학 입시와 중학교 입학 그리고 취업과 대학 입시를 동시에 경험한 것이 어쩌면 좋은 글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컨셉진 50일간 N개의 일상에 대해 글을 쓰는 나만의 프로젝트 17일차에는 동생의 입시를 함께 준비하며 생각한 일상을 기록한다. 


최근 동생의 입시를 함께 준비하며 든 생각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코로나 이후 사회는 급속도로 변했는데 6년 전이나 지금이나 대한민국의 입시 제도(라고 부르고 고3 아이들의 일상을 한 가지 기준으로만 재단하여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 시스템)는 바뀌지 않았구나. 도대체 경험이라곤 풍부하지 못할 19살에게 미래에 대한 설계를 하라는 게 무슨 소용이 있으며, 우리나라 학교 및 교육 제도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존재 하는지? 고등학교 때로 돌아가고 싶냐고 물으면 단 1초의 고민도 하지 않고 "아니."라고 대답한다. 좋아하는 것이 명확하여 조금씩 실천해나가는 일상을 자유롭게 누리는 지금이, '공부만'해야 했던 고등학생 때보다 훨씬 좋기 때문이다. 그때는 억지로라도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 했고, 대학에 가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했다. 지금도 어렵게 느껴지는 내 꿈과 좋아하는 일을 엮어 입시 담당 선생님 앞에서 문장으로 (억지로) 설명해야 했다. 이유는 하나다. 대학에 붙기 위해서. 대학에 붙기 위해서 다른 모든 일상들을 포기해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이가 없다.


둘째, 부모가 지원해주지 않는 아이들의 입시란 정말 지옥이구나. 6년 전, 부모님이 이혼했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는 문제는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나 혼자 입시를 준비했나 싶을 정도로 부모님은 내 진학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 떠난 엄마는 그 뒤로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내고 있고, 남은 아빠는 오로지 등록금 걱정 뿐이었다. 합격을 했는데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당시의 내가 이기적이고 감정이 없는 사람이었던걸까? 그러니까, 부모의 일은 나의 일과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 해야 했다. 이혼을 하시기 직전 두 분이 너무 많이 싸우니까 차라리 이혼을 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할 정도로 무관심 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면서 두 분이 막상 이혼을 해버리자 마음 한 켠에 이 사태는 내가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인건가라는 죄책감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는 두 분 사이에서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을 느꼈고, 입시에 집중했다기보다 그 길 밖에 살아갈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당시에 대학 합격 만을 바라보며 살았다. 하지만 결국 언니와의 합의(가족과 함께 지내자)로 인서울 대학을 준비하던 꿈을 포기하고 6개 중 2개만 지원했는데, 하필 미련이 남아 지원한 외대에 추가 합격이 된 것이다. 그렇게 김해를 떠났고, 타지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대학 졸업을 준비하고 있는 지금, 동생의 입시를 함께 준비하며 지난 나의 6년 간의 삶이 주마등처럼 지나감을 느꼈다. 입시가 인생의 전부였는데, 사실은 그게 아님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특히 기업이 사회를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취업만을 위해 존재하는 대학이라는 기관에 디자인 전공을 준비하는 동생이 비싼 등록금을 들여 대학 생활을 하는 것이 맞는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코로나 이전처럼 대학 생활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처럼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할 텐데 동생의 경제 생활이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6년 전에 겪었던 지옥을 지금의 동생은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입시를 도와주고는 있지만 사실 힘들다. 동생에게 바짝 고생하고 푹 쉬자라는 말을 건네면서도, 누나이기 전에 그 길을 먼저 살아온 사람으로서 지금 내가 하는 말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기 때문이다. 동생에게 위로를 건네는 순간에 입시가 끝난다는 것이 사실은 끝이 아님을, 그 다음엔 대학 졸업과 취업과 직장 생활 그리고 그 다음으로 계속되는 인생의 시작점이 바로 입시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살려면 계속 달려야 한다. 서두르지는 않지만 무작정 쉬어서는 안된다는 걸 자꾸 실감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과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겹칠 때 자본주의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동생이 나중에 알게 되리라 생각하면 조금 슬프다. 


동생의 손을 잡고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초등학교 교실에 들어가던 과거의 나는 블로거라 되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지금도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대학생 때는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전세 대출이라는 것을 조금만 더 빨리 알았더라면, 20대 초반에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알바를 닥치는 대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시간에 책 한 줄이라도 더 읽거나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났다면 좋았지 않았을까? 또한, 부모로부터 금전적인 도움을 받는 학생과 그렇지 못 하는 학생들 사이에는 즐거운 대학 생활이라는 경험의 차이가 꽤 크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다. 금수저 흙수저의 차이가 누군가의 잘못은 아니니까 논하고 싶지는 않으나, 적어도 돈이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하지 않아도 되는 경험을 할 확률이 현저하게 적다. 아무것도 모르는 대학생은 어떤 경험을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스스로는 돈이 꽤 자주 부정적인 생각들을 하게 하는 요인이었기에 한 치 앞도 모르고 입시만을 준비하고 있는 동생을 보며 어떤 말을 건네야 하는지 한참을 고민했다.    


두 시간 정도의 긴 통화를 끝내고 카카오톡으로 서로의 할 일을 정리하는데, 동생이 힘들다고 말했다.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불안함을 잠재우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에 대해 말하면서 사실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지금부터 시작이란다.." 그리고 이는 곧 서투른 회사 생활에 힘든 스스로에게도 하는 말이었다. 회사 생활도 결국엔 끝날 것이고, 이 이후의 삶은 안겪어봐서 모르겠지만, 회사생활의 끝이 결국엔 또 그 다음 행위의 시작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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