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차ㅣN개의 일상ㅣ정보 격차ㅣ기술ㅣ핀테크ㅣ아빠와 딸
63년생 손영일과 97년생 손유희는 사는 삶이 너무도 다르다. 사람마다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기술을 다룰 수 있는 능력에 따라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은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하는 지점이라 생각한다. 태어난 시대는 다르지만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컨셉진 50일간 기록하기 프로젝트 6일차이자, 여름휴가 2일차인 오늘, 디지털 격차(정보 격차)에 의해 발생하는 '기술 소외 현상'에 대한 일상을 기록한다. 아빠와 함께 보낸 일상 중에 무수히 느꼈던, N개의 일상 중 하나로, 이 글을 쓰는 도중에도 여러 번 아빠는 스마트폰을 내게 맡겼다.
타 지역에서 대학을 다녔기에 기숙사 짐을 빼야 하는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만 고향에 왔었다. 자취를 하고 난 뒤에는 (거처가 있으니) 고향 집에 오는 날이 드물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집에 오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 있었으니, 바로 아빠의 은행 업무 처리. 18시에 일을 마치고, 일요일에만 일을 쉬는 아빠의 일상에서 시간 내어 은행에 방문하는 것은 힘들었다. 어쩌다 시간을 내어 은행에 방문하면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래서 전화로 처리를 해보려고 하지만 늘 복잡하다고 토로하셨다. 통화를 하면서 키패드를 누르고, 심지어는 다 누르지도 못했는데 다시 입력하라는 음성이 나올 때도 있다고 하셨다. 또한 어플을 이용하여 업무 처리를 한다는 것은 아빠에게 늘 새로운 도전이었다. 토스나 카뱅을 신뢰하지 못하는 아빠는 공인 인증서를 이용한 금융 생활을 하고 있었고, 몇 달에 한 번씩은 처리해내야 하는 비대면 업무에 어려움을 겪곤 하셨다. 공인인증서를 사용하여 이체하는 것도 당시에 반복적으로 몇 번을 하고 나서야 사용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복잡한 과정을 처리해내고 계신다. 그렇다고 타지에 있는 내게 매번 전화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늘 집에 오면 잘 안된다며 부탁을 하시곤 했다.
이번에 내게 맡겨진 임무는 통장을 해지하는 것이었다. 노트북을 앞에 두고 나는 아빠의 주민등록증, 공인인증서, 통장(계좌번호),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준비했다. 또한 최근에 노트북 수리를 맡겨서 초기화를 시켰기에, 각종 보안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과정을 인내해야했다. 이번 미션(?) 수행을 위해 처음에는 노트북을 준비했었는데, 잘 안되어 앱으로 인증서를 복사하는 과정까지 인내했다. ARS를 몇 번이나 반복하고나서야 통장을 해지할 수 있었다. 30분 정도가 걸렸고, 아빠는 내게 컴퓨터 관련 직무를 준비해보라며 대단하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때, 이 상황을 초래한 핀테크, 또는 4차 산업혁명의 여러가지 기술들이 떠올랐다. 인공지능, 자동화, 초연결의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아버지 세대들은 사는 것 자체가 어렵지 않으실까?
여러 개의 화면을 동시에 넘나들며 전화를 받고 문자의 인증번호를 복사해서 붙여넣다보면 나도 지칠 때가 있다. 본인이 본인의 통장 및 카드를 관리하는 것은 보안을 위해 당연한 원칙이지만, 그 과정이 너무나 지난하고 특히 기술로부터 소외되어있는 아버지 세대 대부분에게는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 생각한다. 표시되는 글자도 아버지에게는 너무 작았다. 핀테크 뿐 아니라 기술을 활용하여 일상을 누리는 것들 대부분에서 아빠의 삶과 나의 삶은 다르다. 가령 버스가 몇 분 남았는지 확인을 하는 것, 내가 원하는 시간에 택시를 마중 해 타는 것, 인터넷으로 저렴하게 물건을 구입하는 것, 카카오맵으로 원하는 공간을 찾을 수 있는 것 등의 기술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기술은 없는지 생각해본다. (카카오톡이 지배하는 한국사회) 더군다나 코로나19시대의 백신 예약까지 스마트 한 기술로 편리함을 누리는 사람도 있지만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에 대해 사회적으로 망을 쳐줄 수는 없는 것일까? 우리 아버지만 이렇게 불편함을 느끼고, 이 현상을 바라보는 나만 불편함을 느끼는 것일까? 특히 은행거래의 경우 1원이라도 잘못되면 안된다는 불안감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핀테크란 너무도 어렵다.
며칠 전 지하철을 기다리는 데, 아버지 또래 정도 되어보이는 아저씨 한 분이 지하철을 타고 "00로 가냐"라며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문이 닫히기 직전 서둘러 내리셨다. 지하철 어플로 아저씨의 목적지를 확인하고, 내가 기다리는 열차를 함께 타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아빠와 아저씨의 공통점은 이들이 원하는 것은 복잡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원하는 것은 명확한데 목적 달성을 위해 얻는 정보가 기술로 이루어지기에, 그 기술을 다룰 수 없어서 혼란함이 가중되는 것이다. 언택트 시대가 혼란스러운 고령층은 직접 은행에, 병원에, 부동산에 가야한다. 이들의 현재 모습을 바라보며, 미래의 내 모습에 대한 생각을 해본다. 지난번 아빠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분명 사회는 바뀌고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바뀌더라." 내가 언제까지 편리한 기술을 편리하다고 생각할 지, 알 수 없어서 두렵기도 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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