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차ㅣN개의 일상ㅣ회사생활ㅣ신입사원ㅣ일ㅣ20대
백신 예약을 했다. 혹시나 몸이 안 좋을 상태를 대비하여 금요일 오후로 예약을 했는데, 회사에 보고 드리니 반차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순간, 반감이 들었다. 반감이 든 첫 번째 이유는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긍정적이지 않은 답변을 얻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팬데믹 상황에서 백신을 맞는다는 것은 나의 불찰이나 나만의 이익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집단 면역을 위한 국가적 차원의 일인데 왜 개인의 시간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반차를 써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해를 돕자면, 최근 대체 휴일에 회사를 가지 않았는데, 백신 접종 또한 이와 같은 이유라고 생각하는 것이 나의 입장이다.
검색창에 '백신 연차'라고 검색하니 6월에 보도된 기사에서 나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미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3월에 보도된 의학 신문에는 백신 접종자에게 유급휴가를 주어야 한다는 발의안이 검토 중이라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고, 관련 기사인 5월에 보도된 자료에서는 잔여 백신 등 백신 접종이 본격화 된 이후 일부 제약사가 격려품까지 지급한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부에서 백신 접종자에게 유급 휴가를 줘야 한다는 내용을 공표화 하지 않은 이상(반발하는 기업이 많은 사회에서 그렇게 될 일은 없겠지만) 이 문제는 갑론을박이 치열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긴, 유급 휴가가 말이 쉽지 기업의 입장에서는 싫을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회사를 운영하는 입장이 아니라 월급을 받으며 일하는 신입 사원의 입장이라, 백신 접종을 앞둔 내게 유급 휴가를 주지 않는 것에 의문을 가진다. 결국 직원의 건강이 회사의 이익과도 맞닿아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의문은 더욱 커진다.
사회생활을 하지 않았던 작년에는 도서 구입비를 지원하는 복지를 가진 회사가 좋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현재, 여러 방면에서 복지가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현 회사를 다니며 느낀 것은 다음과 같다. 복지가 좋은 기업은 다른 게 아니라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회사 생활을 하는 직원들이 많은 곳이 아닐까. 도서 구입비든, 식비든지 간에 1)"이런 회사 없어"라며 복지제도에 대해 직원을 대상으로 생색을 내거나 2)제때 경비를 지급하지 않거나 3)몸과 마음이 건강한 생활을 하지 못하는 직원들이 많은 기업이라면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돈이 급하다면 고민은 해보겠으나) 역시 엮이지 않는 게 답이다. 저성장 취업난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기업들에 선택되어져야만 하는 나와 내 친구들이 기업에 대한 분석을 필수적으로 해야 함을 느낀다.
앞서 말한 세 가지 이유에 모두 해당하는 회사에 8개월 째 다니고 있다. 회사 자체의 수익을 위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운영을 맡은 기관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럭저럭 버텨왔다. 그런데 오늘, 회사와 직접적으로 대면해야 하는 상황과 부딪히자 앞으로 이 기업에서 계속 지내야 하는지에 대해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복잡한 생각을 정리해 낼 글과 문장들이 필요했다. 컨셉진 50일간 글쓰기 프로젝트를 통해 얻어가는 것이 많은데, 그 중 하나는 복잡한 생각들을 명쾌하게 정리할 수 있는 기록의 힘을 매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덕분에 오늘도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하는 일상을 보낼 수 있었다.
회사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건 좋다. 제공하는 인프라와 월급으로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환경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무직이라 더울 때 시원하고, 추울 때 따뜻하게 생활 할 수 있으며 쾌적한 화장실이 있다. 또한 프리랜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해 나가며 성장하는 기분을 느끼는 게 일상이 되면 삶에 활력이 생긴다. 실직, 이직에 대한 걱정 없이 안정적으로 일을 하면 경제적 자유를 위한 시드머니를 구축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고, 경제적인 능력이 뒷받침 된다면 장기 목표를 세우고 이루기 위해 노력하여 성취하는 빈도도 많아지기에 행복하다. 현재 직무에 대한 만족도 또한 높다. 다만, 현재 기업에 소속되어 일하는 것에 회의감을 느낀다. 다른 기업들과 함께 일하는 환경인 지금, 소속감과 성취감을 함께 느끼며 일하는 타 회사 직원들이 부러웠을 때가 종종 있었다. 오늘 기록을 통해 회사 내에서 소속감도 성취감도 없이 일하는 스스로를 자각할 수 있었다. 오로지 업무에 대한 성장만을 위해 버틴다. 그리고 이직을 위한 준비를 서서히 해 나갈 예정이다. 순간의 감정으로 퇴사를 결정하지 말고, (어차피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아르바이트를 할 것이기에) 다른 기업을 찾아보자. 그리고 그 전에 졸업부터 잘 하자.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중간 관리자로 애를 먹었던 지난 시간들과 달리, 오늘 상부와 직접 이야기를 하며 상부가 왜 답답해 했는지, 나는 왜 억울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제대로 일하고 있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지난 회사 생활에서 스스로는 지금 처리하고 있는 일을 왜 해야 하는 지를 깨달을 수 없었는데, 사실 그 일은 중간 관리자가 (급하지 않은 일들을) 엉뚱하게 시킨 일들이었고 스스로는 무경력자이기에 결국 결과가 좋지 못할 일들이었다. 지난 주부터 상부와 대화 후 일을 처리하면서 "아, 이건 내가 해야한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는 근무 시간을 보며 지금 내가 일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상부와 중간 관리자 모두 "재밌게 일해야 한다"라고 동일하게 말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재밌다는 것은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전에는 엉뚱한 일을 해서 몰입할 수 없었다면 오늘은 정확하게 몰입했다. 일 하는 게 재밌었다.
마지막으로, 현회사의 시스템에 익숙해져서 내게 텃세를 부렸던 직원들과도 더 이상 일 이외의 유대를 쌓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사람과의 관계를 가장 중요했던 스스로에게 변화가 생긴 지점이다. 3주 전에 신입 직원 한 분이 회사의 태도를 못 견디고 퇴사를 했는데, 두달간 정을 준 친구라 빈자리가 컸다. 나와의 마지막 커피를 다 마시고 떠나는 그 친구는 얼른 이 회사를 그만두라고 말했다. 남겨진 나는 퇴사와 1년 경력 사이에서 고민하다 결국 경력을 선택했다. 다른 곳에서 일을 한다고 해도, 현재의 직무는 경력을 계속 쌓아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기록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바꾸지 못할 사람들을 상대로 너무 긴 시간 동안 힘들었던 스스로에 대한 위로이자 지난 8개월보다 앞으로 더 길게 지속 할 '홍보 업무'를 하는 일상의 시작이다.
홍보 업무를 하는 일상은 하루에 8시간씩 주 5일(최소 4일)동안 꾸준히 하게 될 것이다. 이는 N개의 일상들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홍보 업무를 하는 일상에 할애한다는 소리다. 그 시간들은 나의 일상과 전체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어떻게 일하는 일상을 보낼 것 인지에 대한 고민이 이제 삶의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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