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차ㅣN개의 일상ㅣ짧지만 강렬한 대화ㅣ알고리즘ㅣ우연ㅣ친구ㅣ20대
한 동네에 온갖 직종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는 이야기를 전하는 준영의 표정은 고등학생 때와 변함이 없었다. 6개월 만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어제 본 것 같다며, 어젯밤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해 보게 된 영상에 대해 알려주었다. "게이가 살기 편한 동네라고 소문이 날 정도로 편견, 차별 등이 없이 잘 살 수 있었던 동네였데."라는 문장을 글로 되새기며, 현재 살고 있는 세상이 여전히 차별과 혐오가 만연하다는 생각을 한다. 차별이 적은 동네에 살고 있는 한 개발자가 알고리즘에 대해 환멸을 느끼며 예측하지 않은 상황을 만드는 '우버' 같은 앱을 개발했다는 내용의 영상을 본 준영이는 계획이나 목표를 세워가는 것이 중요한 'ENFJ'형 인간으로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앞선 이야기를 들으며 나 또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유튜브나 전자책 플랫폼에서 추천해주는 영상, 책을 보며 "참 신기하다 어찌 이렇게 내가 원하는 것만 추천해주지?"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준영이에 의하면 결국 그것(정해진 목표, 틀)은 좁은 세계이고, 그 세계에 갇혀 살아가는 사람은 삶에서 만족감은 크겠지만, 불편함으로부터 배우는 경험은 하지 못한다. 대화를 나누다보니 나 역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 불편함을 느끼며 서로 맞춰가야 하는 과정을, 불편함을 없애려 노력하는 시간 자체가 점점 없어져 버리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면 서로 다른 우리가 함께 살아갈 이유는 없겠구나. 좁은 세계, 자신만이 만족하는 세계가 있으면 그 이외의 것들은 모두 만족하지 못할 것이고, 자신만의 세계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다면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상황이 많을 인생이구나. (좁은 세계 내에서 불편한 상황이 생기면, 그것대로 또 스트레스.)
짧지만 강렬한 대화, 20살 이후 준영이와 떨어져 지내며 느꼈던 우리의 순간을 요약한 어절이다. 고등학생 때 늘 학교에서 만났던 준영이와 나는 타 지역으로 대학 생활을 하게 되어 종종 안부를 묻고 지내왔다. 일을 먼저 시작하여 대학생인 친구들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준영이는 친구들에게 선물 상자와 함께 손편지를 택배로 보내곤 했었는데, 나 역시 옷가지나 생필품 등을 택배로 받으며 고맙게 지냈다. 준영이의 선물 상자에는 늘 책이 있었고, 그래서 지금의 내가 된 것에 준영이의 영향이 컸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책들을 읽으며 삶의 다양한 가치들에 대해 하나씩 관심을 가지고 글과 영상으로 책에 대해 기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고마움을 느끼는 친구, 준영이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아이였다. 또한 준영이는 상대를 위로할 줄 아는 아이였다. 그래서 나는 입시나 가족 문제로 힘들 때 또는 인생의 고민이 있을 때 준영이와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 다시 앞으로 밀고 나갈 용기를 얻곤 했었다. 그 과정을 지난 5년 동안 반복했다. 오늘도 역시 나는 준영이로부터 새로운 삶의 가치와 나의 성향에 대해 깨닫는 시간을 보냈고, 오늘 준영이와 함께 보낸 시간을 컨셉진 50일 글쓰기 프로젝트, N개의 일상에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록한 부분은 우리가 나눈 대화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지난 삶에서 준영이와 같은 친구와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준영이와 오래도록 대화하며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내 생애 최고의 우연은 준영이와 친구가 되었다."라는 문장으로 마지막 문단을 채우고 싶다.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것은 알고리즘과 같은 기술의 영역으로는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안부를 주고 받고, 택배 서비스를 예약하고, 함께 먹을 음식을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등 주변은 점점 기술의 영역이 커질 것이다. 심지어는 인터넷으로 친구를 사귈 수도 있다. 하지만 친구와 함께 나누는 밀도 높은 대화, 공감하는 순간이나 제스처로 느껴지는 친밀감 등 기술로 느낄 수 없는 순간이 N개의 일상에 많았으면 좋겠다.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살 수는 있겠지만, 어느 순간 공허함이 밀려온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힘든 오늘을 보낸 사람들이 짧지만 강렬한 삶의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또 내일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힘든 오늘을 보낸 내가 준영이 덕분에 지금 잘 살아가고 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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