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차ㅣN개의 일상ㅣ3가지에 대한 단상ㅣ회사ㅣ소나기ㅣ장소ㅣ20대






 


어떤 꿈을 분명 꾸었던 것 같은데 생각이 나지 않는 것처럼, 찰나에 든 생각은 종종 증발해버리기 때문에 기록으로 남겨둔다. 수단은 주로 아이폰의 메모장. 오늘 점심시간, 잠시 집에 들러 회사로 가는 길에 정착하는 삶이란 가능한 지에 대해 생각했었다. 분명 조금 전에 집에 있었는데 어느 순간 회사에 있는 것처럼, 분명 1년 전에는 용인에 있었는데 지금 대전에서 생활하고 있고, 5년 전에는 김해에서 떠날 생각일랑 없었는데 현재 대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에 도착하기 직전에 앞선 생각들을 짧은 메모로 남겨두었고, 오후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라떼를 마시려는데, 준영이로부터 연락이 왔다.



 


고등학생 때부터 준영이는 친구들에게 문장들을 선물하곤 했는데, 이상하게 나는 준영이로부터 받은 문장들에서 나의 삶을 보곤 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줄곧 떨어져 지내는 준영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며 지내고 있는건지, 25살이 된 지금도 준영이와 공감 가는 영상, 사진, 경험담이나 이야기, 특히 책이나 엽서 등의 글들을 많이 공유하곤 한다. 주로 준영이가 내게 공유하는 것들인데, 결핍 많은 사랑 방식을 지닌 나는 준영이의 아낌없이 나누는 사랑의 태도가 늘 부럽다.

오늘 준영이가 보내준 글귀는 총 3가지였는데, 요즘 나의 일상들과 맞닿아있어서 컨셉진 50일간 글쓰기 프로젝트에 기록하기로 했다. 


☝️ 회사 생활 7개월 차인 내가 정신을 차리게 해주는 문장들

지난 7개월간 회사에서 일어난 일들이 누군가의 악의로 일어난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충분히 보상 받을 수도 없다는 것도 잘 안다. 그래도 이 답답함을 해소 할 만한 창구는 없었다. 남들보다 이른 취업 생활에 친구들에게 회사 생활인 내 일상을 말하는 것 조차 폭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눈치를 봤었고, 그렇다고 퇴사를 할 수도 없었다. 회사를 그만둔다고 하면 당장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경제력을 지닌 내가 과연 이 회사를 그만둘 수 있는 지에 대해 고민하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두 달은 더 버텨야만 했고, 이대로 그만두기에는 현재 회사에 다니는 장점도 있었기 때문에 제 발로 나가기도 아쉬운 상황이었다. 

사람들과 지내는 게 사실 가장 힘들었기 때문에 스스로가 적응을 못한다고 합리화하는 게 마음이 더 편했고, 소외를 겪곤 했었다. 이럴 때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 지 알 수 없었던 내게 준영이가 '자기 자신의 마음과 주변 상황을 어떻게 다스리느냐가 정말 중요하다'라는 문장을 준 것이다. 탁월했다. 정확한 해결책을 제시해준 것은 아니지만, 준영이가 보내준 문장 덕분에, 마음과 주변 상황을 다스리는 능력이 내게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울먹임 많은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닌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그 사실을 아는 것 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다. 


✌ 인생은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는 생각 



정말이지 소나기가 내리는 것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다. 1년 전에 현재와 같은 일상을 상상하지도 못했듯이, 회사 생활을 하는 도중에도 소나기는 계속 내렸다. 7개월 간 회사도 변하고 사람도 변하고 나도 변했다. 오전에는 퇴사하고 싶었는데, 오후에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퇴근하고 다시 출근하는 날의 반복에 나 조차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환경에서 어찌됐든 나는 우산을 챙겨야만 했다. 아주 튼튼한 우산이 아니라 바람에 휘어진 우산이지만 준비하지 못한 상황 속에서도 대전에서 혼자 회사 생활을 하며 살아남기 위해 노력 중이다.    



👌 어떤 장소에서 정착하는 삶이란 무엇인가, 내 삶에서 정착이란 가능할까? 



모든 것들이 변하는 환경 속에서 살아왔던 지난 5년 간의 삶을 떠올렸다. 장소와 맺어지는 관계와 장소 속 사람들과 맺고, 맺어지고, 없어지는 관계에 대한 고민. 20살, 김해에서 떠날 때  끊어져 버린 사람들과 동시에 용인과 서울에서 새로 만났던 사람들. 21살, 확장된 관계와 서서히 멀어진 관계들. 22살, 김해에서 휴학 생활하며 다시 연락이 닿은 사람들과 새롭게 만났던 짧은 인연들. 24살, 코로나 시대에서 비대면 생활하며 연결된 채로 지내거나 연결이 끊긴 사람들과의 일상들. 마지막으로 25살 현재, 정말 많은 사람들을 새롭게 만났지만 그만큼 사람에 대한 불신도 늘어난 일상. 


한 장소에서 정착하며 지내는 게 불가능했던 지난 삶들을 떠올려보니, 경계 속에서 지내는 삶은 정말 고난하다는 생각이다. 자유로움도 분명 있었는데, 불안함도 항상 동반하는 삶이었다. 순간, 최근에 둘째를 출산하여 딸 하나 아들 하나의 엄마가 된 언니가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언니는 김해에서 줄곧 지내다가 형부와 함께 집을 떠났다. 형부가 김포로 가자, 언니도 김포로 갔다. 언니가 김해로 가면 형부도 김해로 갔을까? 그런 생각을 하자니,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정착하는 것은 오래된 관계가 (반드시는 아니지만) 생길 수 밖에 없고, "사회적 동물 이전에 장소가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 존재인 인간이 한 장소를 떠나는 것은 그 장소에 속한 다른 모든 사람들을 떠나는 것"이라는 책 속 문장은 내 고민과 맞닿아 있었기에 반갑다는 생각을 했다. 


회사 생활과 동시에 대전 생활 7개월 차, 내년 2월 까지는 집 계약이 되어 있기에 대전에서 지낼 생각이지만, 2월 이후에는 대전에서 계속 지내야 할 지, 김해로 갈 지, 서울로 갈 지, 아니면 또 다른 어딘가로 갈 지에 대해서는 고민 중이고, 그 고민의 순간에 각 지역의 관계들에 대해 생각 또 생각을 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여름 휴가 이후 아빠와 함께 살 집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과 2월이 되기 전에 이사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 퇴사를 해야 하는 지에 대한 고민, 그만두고 싶지 않은 서울 기반의 인터뷰어로서의 삶, 곳곳에 퍼져 있는 친구들과 어딘가로 가게 된다면 자주 만나지 못하게 될 소중한 인연들. N개의 일상을 보내게 된 이유는 한 장소에서 오랫동안 정착하지 못한 일상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정착하지 못하는 삶을 스스로가 선택해왔기 때문에 어쩌면 이 삶이 나의 삶인지,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정착하는 삶이 과연 가능한 지에 대해 생각해본다. 동시에, 9년 전에 만났던 준영이와의 인연과 장소에 상관없이 우리가 연락하며 지낼 수 있음에 감사한다. 





*12일차는 밴드에 바로 글을 썼다. 


*학교가 아니라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회사에서 배움을 얻고자 결제한 퍼블리, 위안이 되고 배울만한 업무 관련 글들이 많다. 참담한 회사 생활 만족도 결과를 보니 현재 회사 생활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감사한 조상님들 덕분에 다음 주 월요일까지 휴일이다. 서두르지 않고 멈추지도 않는 주말을 보내고, 다음 주 부터 또 화이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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